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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개발협력 역사

2차 세계대전 후

국제개발협력이 본격화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로, 이는 지구촌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전쟁 피해국 및 신생독립국의 재건을 지원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부터입니다. 이 당시는 빈곤과 개발문제의 주요 해결책으로 서구를 모방한 근대화 전략과 대규모 자본과 기술을 투입한 경제성장 방식이 제시되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미국이 유럽재건을 위해 실시한 4년(1948-52)간의 마샬플랜이며, 이것은 주로 인프라개발 및 기술협력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1960년대

1960년대의 주요전략은 경제성장과 현대적 기술전수가 도농, 빈부격차 감소로 이어진다는 적하 (Trickle down)이론에 기반한 것입니다. 따라서 주요원조 형태로는 중앙정부와 협력하여 물리적 인프라 구축을 위한 프로젝트였으며, 이를 위해 재정 지원과 전문가 파견이 활발하였습니다. 또한 동서진영의 이데올로기 성향에 따른 원조를 실시하였으며, 남북문제 해결을 위해서 IDA(International Development Association), DAC(Development Assistance Committee), UNDP(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 등 주요 공여국 협의체와 국제기구가 설립되었습니다. 이 시기는 개발의 황금기로,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및 개도국의 경제 성장률이 높았으며,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주요 공여국과 세계은행의 원조규모도 증가하였습니다.

1970년대

1970년대에, 처음으로 원조가 빈곤감소 및 실업감소라는 명확한 목적과 연결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는 경제성장이라는 간접적 방법으로는 빈곤감소 및 불평등이 해결되는 것이 불충분하므로, 빈곤퇴치를 위해 보다 더 직접적으로 빈곤층을 대상으로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에 기반한 것으로, 세계은행은 “성장과 재분배”에, ILO 및 UNDP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BHN: Basic Human Needs) 충족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 따라 소농을 대상으로 하는 지역 기반 통합농촌개발 프로젝트가 활성화되었고, NGO의 역할이 확대되었으며 봉사자가 파견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역중심 다부문 프로젝트는 복잡한 설계와 행정역량 부족 등 여러 이유로 어려움에 부딪혔습니다. 이 시대는 오일쇼크로 원조규모가 일시적으로 감소했으나, 개발도상국이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원조액이 다시 증가하였고, 원유수출국의 원조가 늘어난 것도 특징입니다.

1980년대

1980년대에 원조 기관들의 주요 관심은 성장의 주요 걸림돌을 제거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선진국에서는 신자유주의적 시각에서 공공부문의 축소가 이루어졌고, 이는 개도국에 대해서도 비슷한 공공개혁을 요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멕시코와 브라질의 국가지불유예 선언이 계기가 되어 민간부문 확장, 무역자유화, 정부지출 감소를 목표로 한 구조조정프로그램이 실시되었습니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교육, 보건과 같은 핵심적 공공서비스 제공의 축소를 야기하였고, 협력국의 개발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일률적인 처방이라는 비판이 일었습니다. 80년대 중반 이후에는 공여국들의 경제 위기극복과 공공부문 확장, 저소득국의 상황악화로 인해 ODA가 다시 증가하였고, 일본이 가장 큰 공여국으로 부상하였습니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대한 주요 보고서들이 출판되었고, 대규모 재난 사건이 급증하면서 NGO를 통한 긴급 구호가 크게 확대되었습니다.

1990년대

1990년대에는 냉전이 막을 내리면서 이념적 경쟁 수단으로써의 원조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며, 구소련 체제전환국들에 대한 관심도 커졌습니다. 이 시기는 민주화 지원과 같이 원조에 있어 정치적 차원이 강화되었으며, 92년 유엔환경 개발에 관한 회의(리우회의)를 계기로 환경과 지속가능한 개발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였습니다. 세계화의 진전과 함께 고채무빈국 이니셔티브(HIPC Initiative)형성을 비롯하여, 인권, 인구, 아동, 여성, 식량 관련 국제 결의문이 채택되어 추후 국제개발협력의 기반을 다지게 됩니다. 또한 이 시기는 섹터 프로그램, 정책 대화, 건전한 국가행정(Good Governance)을 갖춘 개도국에의 원조집중현상, 역량개발에 대한 관심증가가 특징입니다. 이때는 선진국들의 재정적자, 원조효과에 대한 회의감, 환경분야로의 재원이동 등으로 원조액수가 감소했으나, 인도적 지원은 늘어났습니다.

2000년대

2000년대 들어서는 새천년개발목표(MDGs)가 수립되면서 공적개발원조의 핵심목표가 절대빈곤퇴치임을 재확인하였습니다. 세계은행과 IMF도 부채탕감 및 양허성 차관 지원조건으로, 거시경제개혁, 구조조정, 사회정책전략을 포함하는 빈곤감소 전략 보고서를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9-11 테러 이후 테러리즘, 대량 난민발생과 같은 문제가 대두되는 분쟁/취약국가에 대한 안보지원이 크게 증가했으며, 재난구호에 대한 관심도 확대되었습니다. 그리고 몬테레이 UN 개발재원회의, 항공권연대기금 등 혁신적 개발재원 마련을 위한 회의들이 개최되었습니다. 원조효과성 향상에 체계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구체적 목표와 지표가 파리선언으로 도출되었으며, 이에 따라 국제사회는 예산지원 등의 프로그램형 접근법과 비구속성 원조를 강화하기로 하였습니다.

2010년대

2010년대에 들어서는 다시 원조가 무역, 투자, 송금 등 다른 재원과 함께 개발에 기여하는 바에 무게가 실리며 "원조와 원조 이상의(Aid and Beyond)"논의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더불어 기후변화, 분쟁취약성, 공정무역 등 최근 부각되는 범지구적 과제를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해 중국과 같은 신흥공여국 및 기업, 재단, CSO를 포함하는 민간개발자금의 비전통적 원조 주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새로운 원조체제에 대한 구상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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