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DA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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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국가로서 역사

1950년대

1950년대 한국전쟁 직후에 이루어진 원조는 전쟁으로 초토화되어 민간투자의 유인이 취약국이었던 우리나라로 유입되는 유일한 외국자본이었습니다. 이 시기의 원조는 재난에 대처하기 위한 긴급구호에 집중되었습니다. 또한 군사적 방어, 안정 및 재건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물자 및 식량원조 중심의 소비재 지원이 주를 이루었고, 경공업 육성을 위한 중간재 지원도 있었습니다. 이 시기 한국은 원조자금에 높은 의존도를 보였으며, 주요 공여국은 미국으로, 우리나라는 미국으로부터 5억 5천 30만달러에 이르는 원조를 받았습니다.

1960년대

1960년대에는 경제구조 전환기로서 성장 및 투자가 화두였습니다. 대부분이 무상원조였던 이전 복구시기와는 달리, 1960년대부터는 양허성차관이 도입되어 대기업 등을 중심으로 사회간접시설 구축, 전략적 수출 및 수입대체 산업 육성을 위한 프로젝트 원조와 자본재 지원이 이루어졌습니다. 개발 재원으로서 원조의 상대적 중요성이 줄어들었으며, 공여국도 미국 외에 일본의 비중이 증가하였습니다.

1970-1980년대

1970, 80년대에는 대규모 개발사업과 중화학공업 발전의 추진을 위해 도입된 과도한 외채부담에 대한 우려 속에서, 과거 단위사업 중심의 프로젝트 차관은 특정 부문의 종합적 개발을 위한 섹터차관 및 경제 및 산업 전반의 구조를 조정하기 위한 구조조정차관으로 전환하게 됩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 한국이 지원받은 차관 중 비양허성 자금의 비율상승과 함께 원조규모가 감소하고, 미국을 대체하는 일본의 역할대두 및 독일, IBRD, ADB 등 공여기관의 다원화가 나타난 것이 특징입니다.

1990-2000년대

1990년대는 원조 수원국에서 순수 원조 공여국으로의 원조지위전환기로, 한국은 1995년 세계은행의 차관 졸업국이 되었으며 2000년 DAC 수원국 리스트에서도 제외되었습니다.